잡담2012. 3. 22. 11:26



한 까페에서 재봉틀 공동구매를 하길래 작년부터 살까말까 하던 차에 덥썩 질렀다. 싱거 160주년 기념 한정판으로 제작한 싱거 160의 유려한(?) 검은 바디라인에 홀려서 -2만원 더 주면 훨씬 많은 패턴 사용이 가능한 실속 모델을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- 결정을 해버렸다. 공구한 까페의 어느 분이 "미싱계의 테리우스" 라고 농담삼아 언급을 하셨는데 그 때부터 나는 왠지 이 재봉틀을 테리우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(이러다 다이슨 청소기라도 사면 레골라스라고 부를 기세).

19일에 주문해서 20일에 도착했는데 불행하게도 발판불량으로 인해 도착한 날 얼마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쓰다듬기만 해야했다. 판매처에서 새 발판을 보내 줄 테니 그것이 작동이 잘 되면 헌 발판을 보내고, 새 발판도 정상작동 하지않으면 본체와 함께 보내라고 한다. 업체의 A/S대응이 신속하고 친절해서 참 좋긴한데 온라인 구매라서 물건을 늘 택배로 주고받아야 하는 게 불편하다. 제대로 된 물건이 들어오면 왔다갔다 할 일이 없긴 하겠지만.

남자들이 자기의 첫 차를 구입하면 이런 기분일까? 이 기계와 한 몸이 되어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하고, 유지관리를 위한 각종 청소도구도 주문하고 괜히 의미없이 기계를 켰다 껐다하면서 전원들어오는 거 쳐다보면서 흐뭇해하고. 노트북을 처음 샀을 때하고는 또다른 느낌이다.

예전부터 재봉틀은 왠지 로망이었다. 초등학교 때 별로 친하지도 않은 친구 집에 어쩌다가 따라갔는데, 학교에서 마침 신발덧신(외부 손님이 오면 신발 위에 바로 신을 수 있게 주머니 모양으로 만든 것)을 한 켤레씩 집에서 만들어오라고 숙제를 내 준 참이었다. 그런데 그 친구 엄마가 천을 슥슥 자르더니 재봉틀로 다다다다다 박아서 순식간에 내 것까지 만들어주시는게 아닌가!! 삐뚤삐뚤 손바느질만 할 줄 알던 나에게 재봉틀은 그야말로 외계문명의 신기술과도 같았다.

오늘 퇴근하면 새 발판이 도착해있을까?
마땅한 원단이 없어서 당분간은 집에 있는 걸레를 신나게 박아댈 것 같다.
Posted by 대오대오